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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역사적 배경 해설

노량해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마지막 해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중에 수많은 해전을 치르며 조선을 지켰습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실제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아봅시다.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약 7년간 일어난 조선(한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당시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여 발생했으며, 그 목적은 명나라(중국)로의 진출을 위한 중간 정거장 확보였습니다.

임진왜란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뉩니다. 전기는 1592년부터 1593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일본군의 강력한 공격으로 인해 조선은 순식간에 수도 한양(현 서울)까지 함락당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명나라의 국력을 동원한 조선군의 반격과 이순신 장군의 해상 전투 능력 덕분에 일본군의 진군을 저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유재란


1597년, 일본은 전략을 수정한 후 다시 조선을 침공하여, 정유재란이 시작됩니다. 이때에도 이순신 장군은 명량 해전 등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퇴하며 전세를 뒤집는데 기여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598년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일본군은 철수하기 시작하였고, 이로써 정유재란은 막을 내립니다.

일반적으로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에 포함하여 얘기합니다. 임진왜란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인구와 농경지가 크게 감소하였고, 경제적·사회적 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조선은 국력을 회복하고, 세종대왕 시대의 발전 정책을 계승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노량해전


왜군은 1597년 9월 명량해전에서 패배한 데 뒤이어 육지전에서도 계속 고전하였습니다. 다음 해 8월 도요토미가 병사하자, 왜군은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철수 작전을 서둘렀고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 도독(대장) 진린과 함께 1598년 9월 노량 근해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철수하려는 왜군 고니시의 부대를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때 고니시는 수륙 양면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진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퇴로를 열어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진린은 고니시가 마지막으로 요청한 통신선 1척을 빠져 나가게 하고, 이순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고니시는 통신선으로 사천 등지의 시마쓰(일본 장수 이름)와 연락해 남해•부산 등지에 있는 왜군 수군의 구원을 받아 조•명 연합수군을 협공하면서 퇴각하려는 생각이었지만, 고니시의 전략을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은 뇌물을 받은 진린을 꾸짖고 함께 진형을 재정비해 왜군을 맞아 격멸하기로 했습니다.

11월 18일 밤 이순신의 예견대로 노량 수로와 왜교 등지에는 500여척의 왜선이 집결했습니다. 200여척의 조선•명나라 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 장군은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고 하늘에 빌고 전투태세에 들어갔습니다.

19일 새벽, 싸움은 막바지에 이르고 왜군의 선박 200여척이 불에 타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100여 척이 이순신함대에 붙잡혔고 나머지 패잔선들이 관음포 쪽으로 겨우 달아났습니다.

이순신은 같은 날 오전 관음포(觀音浦)로 도주하는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환을 맞고 쓰러지면서 “戰方急愼勿言我死”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는 역사상 길이 빛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참고 : 다음 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6751#